[취재수첩] 대우 못받는 뿌리산업 장인들

입력 2023-04-03 17:39   수정 2023-04-04 00:32

“‘장인(匠人) 대우’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뿌리산업 없이는 한국 제조업은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홀대받았다고 여긴 탓인지 아쉬움과 걱정부터 튀어나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K뿌리산업 첨단화 전략’에 관해 묻자 뿌리산업계 대표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부산의 한 용접업체 대표는 “한국이 조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용접과 같은 뿌리산업이 큰 역할을 했다”며 “뿌리산업의 발전 없이는 한국 경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른 중소기업 대표도 “원천기술의 씨앗인 뿌리산업을 키우지 않고서는 K반도체도, K조선도, K방산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용접, 열처리 등 제조업 전반에 활용되는 기술과 사출·프레스, 정밀가공, 센서 등 차세대 핵심 기술을 아우르는 산업을 말한다. 국내 제조업 생산의 10%, 고용의 12%(2020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발전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업계에선 그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반인에겐 위험하고, 힘들고, 주변 환경이 열악한 업종으로 여겨지며 기피 대상이 됐다. 뿌리산업이 만들어낸 소재·부품을 이용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제값’을 쳐주는 데 인색했다. 툭하면 ‘원가 절감’의 대상, 중국 같은 제3국에서 대체 가능한 업무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뿌리산업을 하대한 대가는 참혹하다. 적잖은 핵심 주조, 도금, 열처리 업무 상당수를 중국 업체에 목줄 잡혔다. 직업계고 출신마저 뿌리산업을 외면하면서 작업 현장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휘둘리고 있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발간한 <2021 뿌리산업 백서>에 따르면 업계 종사자 51만6697명 가운데 62.9%가 40대 이상이다. 작업 현장에선 20~30대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척박한 국내 뿌리산업 현장과 대조적으로 유럽에서는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장인을 찾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위스의 시계, 독일의 자동차산업은 이런 풍토에서 탄생했다. 최근 정부는 유망 기업 100곳을 발굴해 연구개발(R&D)에 4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의 첨단화 전략을 선보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인 감도 없지 않지만, 이번 대책이 뿌리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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